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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여가의 방향 [04-02-14]
오경림
2004.02.14
1972


Ⅰ. 들어가면서

길고 길었던 20세기가 지나가고 있다. 숱한 역사의 교훈들을 안고 이제 새로운 천년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다가서고 있다. 새로운 시대는 경제적 기반이 점차 안정되어가고 있는 상태에서 사람답게 살고자하는 욕구가 매우 증가될 것이고 그에 따라 복지문제가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될 것 같다.
하지만 그에 앞서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이 복지사회를 위한 자세를 먼저 갖추어야 하지 않을 까 생각되며 그러한 바탕위에서 진정한 복지사회가 이루어 질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와 관련하여 논의를 벗어 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처해 있는 삶은 노동을 통하여 자신의 존재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며 또한 노동의 즐거움 속에 인생의 가치를 만끽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즐겁게 노동하지 않는 사회는 그에 따른 복지 또한 없을 것이고 노동의 피로를 해소할 수 있는 여가 또한 생각할 수 없다. 어떻게 보면 노동은 여가를 위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옛시절엔 생계의 수단으로써 노동의 역할이 더욱 컸다고 보이지만 현대사회에서 노동은 여가를 즐기기 위한 수단으로써 더 많은 역할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까? 이러한 의미에서 노동 속의 여가, 여가 속의 노동에 대하여 연구한 학자들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여가의 의미를 생각해 보기로 하겠다.

Ⅱ. 노동과 여가의 관계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잠재력을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방법으로 노동과 여가를 분리하자는 주장이고, 둘째는 노동과 여가를 통합하자는 주장이다. 프리드람과 같이 첫 번째 입장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기계화, 분업화, 탈숙련화 등으로 말미암아 현대 사회에서 노동에 희망을 거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여가를 보다 창조적이고 의미 있게 만듦으로써 인간의 잠재력 실현을 꾀하자고 주장한다. 반면 프리드랜더(Fridlander)와 같이 노동과 여가를 통합하자는 학자는 사회 전체를 개조함으로써 노동과 여가 모두를 의미 있게 재조직하자고 역설한다. 전자를 분리주의 정책, 후자를 전체주의 정책이라고 각각 일컫는다.
먼저 노동이 여가에 미치는 영향은 여러 측면에서 살펴 볼 수 있는데 직종은 여가활동양식에 영향을 주는 경향이 있고, 노동시간은 여가시간의 많은 부분을 결정하며, 직무만족도의 저하, 소외 등과 같은 노동에서의 태도 역시 여가를 추구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노동이 여가에 미치는 영향을 거론한 고전 사회학자 마르크스는 인간존재의 잠재력과 인간의 정신적, 육체적 능력을 온전하게 실현시킨다는 점에서 여가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는“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먹고, 자고, 입는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켜야 하며, 이를 이해 물질생산의 영역 즉‘필연의 영역’을 가지게 된다”고 보았으며, 인간이 자신의 정신적, 육체적 능력을 온전히 실현할 수 있으려면 이‘필연의 영역’, 즉 물질생산의 영역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물질 생산의 영역이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물질적 풍요를 이룩하는 것 뿐만 아니라 노동 그 자체가 즐거움으로 다가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가 보기에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자는 노동력을 판매하면서 노동력의 사용권을 일정기간 동안 자본가에게 양도하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 자본가의 지시에 순응해야 한다. 따라서 노동자들에게 노동시간은 전혀 자유로운 시간이 아니며 오히려 노동은 노동자들에게 통제할 수 없는 소외된 힘으로서 경험된다.
결국 그는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동자들은 소외된 노동과 부정적인 여가의 악순환 속에 놓여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마르크스는 개인의 노동은 개인의 여가에 반영된다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긍정적인 노동이 긍정적인 여가를 낳듯이 부정적인 노동은 부정적인 여가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동과 여가의 관계는 미래 공산사회가 도래하면 사라진다고 주장한다. 노동 속에 여가가, 여가 속에 노동이 있음으로써 노동과 여가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인간은 자신의 정신적 육체적 능력을 온전히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독일이데올로기』에서 그의 사상이 다음과 같이 함축적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아무도 독점적인 활동영역을 갖지 않으며, 각자는 자신이 원하는 어떤 분야에서라도 자신을 훈련시킬 수 있고 사회가 전반적인 생산을 규제하여 내가 오늘은 이것을, 내일은 다른 것을 할 수 있게 하고, 아침에 사냥가고 오후에 고기잡으러 가며, 저녁에는 가축을 돌보고 저녁식사 후에는 비판에 몰두할 수 있게 되어, 나는 사냥꾼이나 어부나, 목자나 또는 평론가와 같은 전문인이 되지 않고도 저런일들을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게 된다.」
현대사회로 들어오면서 노동과정의 변화, 직업의 다양한 분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여가와 노동의 관계는 영국의 여가사회학자 파커로부터 직업범주별로 분류되고 있다.
전문직이나 경영직 종사자들의 경우에는 주된 삶의 관심이 일이고, 여가에 노동의 흔적이 남는 정도가 긍정적인 의미에서 많고, 자율적이고 정신지향적인 성격을 띠는 노동의 내용과 유사한 내용의 적극적이고 정신지향적인 여가를 많이 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지적한다.
생산직종사자의 경우에는 주된 삶의 관심이 여가이고, 여가에 노동의 흔적이 남는 정도가 부정적인 의미에서 많으며, 자율성이 결여된 상태에서 육체를 많이 쓰는 노동의 내용과 유사한 내용의 소극적인 여가활동을 많이 하는 경향을 띤다고 주장한다.
단순사무직이나 기능직종사자들 역시 주된 삶의 관심은 여가지만, 여가에 노동의 흔적이 남는 정도가 앞의 두 직업범주에 비해 적으며, 중간정도의 직업가치도를 지니고 정신지향적인 성격을 띠는 노동의 내용과 유사한 내용의 여가활동을 자주하는 경향을 띤다고 밝혔다.
그외 여가활동의 차이를 살펴본 여러학자들도 높은 직업위세를 가진 사람들이 낮은 직업위세를 가진 사람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여가에 참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위렌스키(Wilenski, 1961)도 파커와 비슷한 입장에서 노동과 여가의 관계를 바라보고 있다. 그는 두 가지 효과이론을 통해 노동의 특성과 여가의 특성이 서로 관련되어 있다고 본다. 하나는 확산효과(spillover effect)로서 여가가 노동에서의 경험 및 노동에서의 태도와 연속적일 때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노동의 성격이 자율적인 관리직이나 전문직의 경우에 나타난다고 그는 주장한다. 다른 하나는 보상효과(compensatory effect)로서 노동이 자율적이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노동에서 성취하지 못한 것을 여가에서 성취하려는 경향을 보일 때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광부나 정유노동자 등 심한 육체적 노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흔히 나타난다고 그는 본다.
현대사회에서 직장에서의 노동은 그 사람의 자아실현과 여가를 좌우하고 있다. 직장에서의 일에 대한 동기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직무를 수행토록 하는 힘으로 정의 될 수 있는 만큼 직무만족은 여가활동의 만족으로 이어질 것이다.

Ⅲ. 맺으면서

사회는 어떤 특정한 부분에 의하여 이끌어져 가는 것은 결코 아니며 사회에서 필요로 하지 않는 제도 또한 결코 생겨나지 않을 것이며 -필요악이란 것은 있을 것이지만- 사회속의 어떠한 제도든 유기체와도 같이 서로 얽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제도에 대하여 만족되지 못하고 불평불만이 표출된다는 것은 우리몸의 어떤 부분이 병든 상태에 있다는 것에 비유될 수 있다. 어떠한 제도든 생성, 변동, 소멸의 길을 거쳐갈 것이고 그러한 과정을 거쳐 사회는 점차 발전해 갈 것이다.
새천년은 문화의 발달과 함께 복지가 매우 중요시 될 것이다. 복지라는 것은 행복, 만족할 만한 환경이란 뜻이라고 본다면 복지사회란 사회보장제도가 잘되어 사람들로 하여금 질병, 노후 등에 대하여 걱정없이 평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복지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은 정부도 아니고 어떤 사회제도도 아니다. 최고의 복지제도의 틀이나 시설이 우리에게 주어진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나 자세가 먼저 갖추어져 있지 않다면 한낱 “그림속의 떡”보다도 못한 것이다. 문화라는 것은 그 사전적인 의미를 보면「사람들의 지혜가 깨이고 세상이 열리어 살기 좋아지는 세상」이다.
새로운 시대를 목전에 둔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호화주택이나 고급 자동차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부터 세상을 바라보는 자세를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쓰레기 한줌 버려야 할 곳에 버려야 하는 마음가짐이다. 의식부터 고쳐나가야 할 것이다. 마르크스가 이야기하는‘필연의 영역’으로 자유로워지고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유토피아 즉, 복지사회는 그 후 자연스럽게 우리곁에 와 있을 것이기 때문에 ...♧

※ 참 고
1. 이진형.
“노동과 여가의 관계에 대한 연구” 성균관대 석사학위 논문, 1995.
2. 데이비드 맥렐런/甲午鉉 譯 「칼 마르크스의 사상」민음사,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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